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(문단 편집) ==== 2차 집단 이동 ==== [[1997년]] [[12월]] [[제15대 대통령 선거]]에서 [[김대중]]이 당선되고 국민회의(78석)는 김대중을 지지한 김종필의 자민련(43석)과 함께 121석의 공동여당이 된다. 그런데 이러다보니 의석상 다시 신 '여소야대' 현상이 일어났고[* DJ 당선 직후 새정치국민회의의 의석을 보면 김대중의 당선 직전 [[이석현(정치인)|이석현]] 의원과 [[권노갑]] 의원이 각각 '한국/남조선 병기 명함' 파동과 [[한보]] 뇌물수수사건이 터졌는데, 이에 이 의원이 책임을 지고 자진 탈당하며 국민회의 의석은 78석으로 줄었다. [[권노갑]] 의원은 한보 뇌물수수로 한보청문회에 불려나와 구속당하고 의원직을 상실했다(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7041700209105008&editNo=45&printCount=1&publishDate=1997-04-17&officeId=00020&pageNo=5&printNo=23511&publishType=00010|권노갑 의원 청문회 이모저모]]). 다행히 권노갑은 비례대표여서 국민회의가 의석을 잃지는 않았다.] 사상 처음으로 야당 신세를 겪게 되었지만 여전히 165석을 보유한 거대야당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이용해 [[김종필]] [[국무총리]] 인준안을 표결조차 못하게 했고, 김대중 정권 타도를 외치며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장외집회 등으로 잦은 정국 파행을 일으키며 연립 여당과 [[김대중 정부]]의 심기를 건드린다. 그리고 이에 연립 여당측은 1998년 [[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]]를 전후해 역 '의원 빼가기' 러쉬를 시작한다. 이때 여당의 의원 빼가기에 항의하던 [[한나라당]] [[하순봉]] 원내총무를 향한 [[자민련]] [[구천서(정치인)|구천서]] 원내총무의 발언이 압권이었는데, '''[[http://imnews.imbc.com/20dbnews/history/1998/1976068_13450.html|"우리는 아직 원금도 못 받았다."]]''' 이게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이, 김종필은 DJP연합이 깨진 이후인 [[제16대 대통령 선거]] 국면에서도 한나라당 [[이회창]]을 지지하지 않고 아예 중립을 선언해버릴 정도였으니 그 빡침의 정도를 알만했다.[* 헌데 재미있는 점은 훗날 그 이회창이 세운 [[자유선진당]]이 몰락한 자민련을 대신해 충청계 지역정당의 바통을 이어받는다는 것이었다.] 1998년 4월 민정계 [[김종호(1935)|김종호]], [[박세직]] 의원을 시작으로 [[오장섭]][* 이회창의 선영이 있는 충남 [[예산군]]이 지역구였다. 총선에서는 자민련 조종석 후보에게 [[개발살]]났으나, 선거법위반으로 치러진 재선거에서 이회창의 지원으로 몰표를 받아 당선되었다. 하지만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민련에 입당해 원내총무와 [[건설교통부]] 장관을 지내는데, DJP연합 해체 이후 다시 한나라당 복당을 시도했으나 그때의 통수를 잊지 못한 이회창에게 거부당하고 그대로 정계에서 아웃된다.], [[이완구]], [[이의익]][* 상술되어 있듯 원래는 자민련 공천으로 대구에서 당선되었으나, DJP 연합이 이뤄지자 신한국당으로 날아갔다가, 기대했던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지 못하자 다시 자민련으로 복당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50% 대 득표차로 한나라당 [[문희갑]] 후보에게 [[개발살]]이 났고, 이후 정계를 떠난다.] 의원이 자민련에 들어가더니, 4월 29일엔 [[서정화(1939)|서정화]], [[이성호(1938)|이성호]], [[김인영(1939)|김인영]], [[이강희]], [[서한샘]] 의원이 새정치국민회의로 이적했다. 이어서 5월에 [[김명섭]], [[정영훈(1932)|정영훈]](새정치국민회의 행), [[이택석]](자유민주연합 행) 의원이, 8월에는 [[홍문종(정치인)|홍문종]](새정치국민회의 행) 의원이 당적을 옮겼다(국민회의 87석, 자민련 48석. 한나라 과반 붕괴). 8월 28일에는 [[이인제]]의 [[국민신당(대한민국)|국민신당]]이 국민회의와 합당한다. 이 때 국민신당 소속이었던 [[김학원(1947)|김학원]] 의원은 자민련에 입당했고[* 부여에서 중학교를 나왔는데, 고향 선배인 JP가 지구당을 물려주겠다고 약조했다고 한다.], [[한이헌]] 의원은 무소속을 선언하며 국민회의가 6석, 자민련이 1석을 늘린다. 이어 9월 초에는 [[노승우]](자유민주연합 행), [[김충일]](새정치국민회의 행), [[차수명]] 의원(자유민주연합 행)이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며, 최종적으로 9월 8일 한나라당의 [[유용태]], [[김길환(정치인)|김길환]], [[박종우(1938)|박종우]], [[송훈석]] 4명이 이동하면서 연립 여당은 국민회의 101석(개헌 저지선 확보), 자민련 52석으로 합계 153석의 안정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, 한나라당은 140석으로 의석이 줄었다.[* 이 명단에는 국민회의 1석, 자민련 2석의 명단이 빠져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